서점에 들러 ‘회계 원리’ 책을 펼쳐보면, 낯선 용어들이 장벽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특히 ‘차변’과 ‘대변’이라는 단어 앞에서 많은 분이 책을 덮습니다.
하지만 워런 버핏은 “회계는 비즈니스의 언어”라고 정의했습니다. 우리가 영어를 모르면 글로벌 비즈니스를 할 수 없듯이, 회계를 모르면 자본주의 시장에서 기업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습니다.
오늘은 복잡한 수식보다는 회계가 작동하는 근본적인 원리에 집중해 보려 합니다. 기업의 상태를 보여주는 자산·부채·자본의 개념과 거래를 기록하는 분개(Journalizing)의 논리를 이해한다면, 투자의 시야가 확실히 넓어질 것입니다.
1. 회계의 기본 항등식: 자금의 조달과 운용
회계의 가장 기초가 되는 공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를 회계 항등식이라 부릅니다.
자산(Assets) = 부채(Liabilities) + 자본(Equity)
이 등식은 단순한 수학 공식이 아닙니다. 기업이 돈을 어떻게 구해서(자금 조달), 어떻게 가지고 있는지(자금 운용)를 보여주는 자금의 흐름도입니다.
가장 직관적인 예로, 5억 원짜리 아파트를 매수하는 상황을 가정해 보겠습니다. 내 현금 3억 원과 은행 대출 2억 원을 합쳐 아파트를 샀다면, 회계적으로는 다음과 같이 해석됩니다.
- 부채 (2억) & 자본 (3억): 자금의 ‘출처(Source)’입니다. 이 돈이 어디서 났는지를 설명합니다. 타인의 자본(부채)과 나의 자본(자본)이 합쳐져 있습니다.
- 자산 (5억): 자금의 ‘운용 상태(Use)’입니다. 조달된 5억 원이라는 자금이 현재 ‘아파트’라는 형태로 존재함을 의미합니다.
결국 회계란, “어떻게 자금을 조달하여(부채+자본), 어떤 형태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가(자산)”를 규명하는 과정입니다.

2. 복식부기의 철학: 차변과 대변의 원리
가계부는 단순히 현금의 지출만을 기록합니다(단식부기). 하지만 기업 회계는 모든 거래의 ‘원인’과 ‘결과’를 동시에 기록하는 복식부기(Double-entry bookkeeping) 방식을 택합니다.
이때 사용하는 도구가 바로 차변(Debit)과 대변(Credit)입니다. 어렵게 암기할 필요 없이, 앞서 설명한 자금의 흐름을 그대로 적용하면 됩니다.
차변과 대변의 구분

- 차변 (왼쪽, Debit): 자산의 증가
- 조달된 자금이 구체적인 형태(현금, 기계, 건물 등)로 유입된 결과를 기록합니다.
- 대변 (오른쪽, Credit): 부채 및 자본의 증가
- 자금이 어디서 조달되었는지 그 원인과 출처를 기록합니다.
즉, “오른쪽(대변)에서 자금을 조달하여, 왼쪽(차변)에 자산을 형성한다“는 논리적 흐름만 기억하면 됩니다.
상식 더하기 — 차변(Debit)과 대변(Credit)의 어원적 기원
라틴어 어원: 의무와 신뢰의 관계
서양 회계에서 사용하는 Debit(차변)과 Credit(대변)은 라틴어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 Debit (Dr.): 라틴어 ‘Debere’에서 유래했습니다. “빚지다”, “갚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과거 상인들은 자신에게 빚진 사람(채무자)의 이름을 장부의 왼쪽에 적었습니다. 즉, “나에게 갚을 것이 있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자산의 성격을 가집니다.
- Credit (Cr.): 라틴어 ‘Credere’에서 유래했습니다. “믿다”, “신뢰하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파생된 Creditum은 “믿고 맡긴 것”을 의미합니다. 상인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채권자), 즉 내가 믿고 돈을 갚아야 할 대상을 장부의 오른쪽에 적었습니다.
한자어 번역의 유래
동양으로 넘어오면서 이 개념은 일본의 개화기 학자들에 의해 번역되었습니다.
- 왼쪽(Debit)은 빚진 사람(Debtor)이 있는 곳이므로 ‘빌릴 차(借)’를 써서 차변이라 하였고,
- 오른쪽(Credit)은 돈을 빌려준 사람(Creditor)이 있는 곳이므로 ‘빌려줄 대(貸)’를 써서 대변이라 명명했습니다.
현대에 희석된 의미
현대 회계에서는 이러한 인격적인 의미는 희석되었고, 단순히 “왼쪽(Left)”과 “오른쪽(Right)”을 지칭하는 위치적 기호로 사용됩니다. 하지만 그 어원에 담긴 ‘권리(자산)’와 ‘의무(부채)’의 본질적인 성격은 여전히 장부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3. 실전 적용: 거래의 분개(Journalizing)
실제 비즈니스 상황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회사가 업무용으로 사용할 200만 원 상당의 노트북을 구매하고, 대금은 법인카드(후불)로 결제했습니다.
이 거래를 회계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인 분개를 해보겠습니다.
- 결과 (차변): 회사에 ‘노트북’이라는 자산이 들어왔습니다. (자산의 증가)
- 원인 (대변): 돈을 바로 준 것이 아니라, 나중에 갚아야 할 의무가 생겼습니다. (부채의 증가)
이 논리를 표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 구분 | 차변 (Debit) | 대변 (Credit) |
| 계정과목 | 비품 (노트북) | 미지급금 (부채) |
| 금액 | 2,000,000원 | 2,000,000원 |
왼쪽(차변)과 오른쪽(대변)의 금액은 항상 일치해야 합니다. 이를 ‘대차평형의 원리’라고 하며, 회계 장부의 무결성을 검증하는 핵심 장치입니다.
4. 마치며: 투자의 눈을 뜨다
회계 원리를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장부를 적기 위함이 아닙니다. 기업이 발표하는 재무제표의 이면을 읽어내기 위함입니다.
자산이 늘어났을 때, 그것이 건실한 이익 창출(자본)을 통해 늘어난 것인지, 아니면 과도한 차입금(부채)을 통해 늘어난 것인지 구분할 수 있는 안목. 그것이 바로 투자의 성패를 가르는 ‘기본기’가 될 것입니다.
핀나이즈는 앞으로도 투자의 본질이 되는 경제 지식을 깊이 있게, 그러나 명확하게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